1990년 대 패션은 요즘 젊은 세대에게 촌스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힙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세련되고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을 앞둔 세기말 감성과 최근의 세태가 묘하게 닮은 지점이 있다. 왜 그럴까? 대략 20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물질문명의 발전에 비해 정신문명의 발전은 더딘 편이다. 여전히 사회는 혼란스럽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그런 면에서 디스토피아적인 세기말 감성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요즘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다. 세기말의 사이버 펑크 코드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피비린내 나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치환되고, 때로는 어이 없이 웃기는 병맛 코드에 열광하며 판타지한 세계관에 온몸을 던진다.
| 구분 | 1990년대 말 | 2020년대 초 |
| 변화의 시기 | 독일이 통일하고, 소련이 붕괴하고, 미국과 중국이 수교했다. 오랜 냉전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한국 정치에서는 군부 시대를 종식하고 최초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그 가운데 IMF라는 아픔도 있었다. 2000년을 앞두고 세상이 요동쳤다. |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고, 영국은 EU를 탈퇴했다. 그리고 아무도 코로나 대유행을 예측하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일상으로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
| 어수선한 사회 | 세기가 바뀌는 시점이다.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컴퓨터가 멈출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았다. 종말론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성큼 다가온 21세기는 희망찬 꿈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일상 속에서 체감할 수 없었다. | 언제쯤 모든 것이 완전히 정상화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다. 최초의 바이러스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고, 그때마다 급증하는 확진자를 보며 말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누구는 음모론을 펼치고, 누구는 방역을 풀라고 데모한다. |
| 불안과 좌절 | 1990년대 말에 아시아에서는 금융 위기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피해가 극심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이 부도 처리됐고, 많은 실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가 왔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해야 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표준으로 만들었다. 졸업식, 결혼식과 같은 대소사는 물론 소풍, 축제, 콘서트까지 빼앗아 갔다. 하늘길은 막혔고, 마음 놓고 사람을 만날 수조차 없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에다가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봐 걱정하고, 생계의 고민까지 더해졌다. |
| 몰입과 분출 |
냉전의 시대가 저물었지만, 새 체제는 완전히 정착하지 않았다. 아직은 모든 것이 가변적이어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무언가에 몰입한다. 포켓몬 빵의 띠부씰을 모으는 데 열중하고, 이전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과감한 패션을 실험했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사이버 펑크가 문화계를 휩쓸었다. |
강제로 활동 반경이 축소된 상황에서 OTT와 게임의 인기가 급증했다.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가상 세계로 몰려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힙합 장르를 빌어 욕을 하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초파가 이상한 맛을 대중화시킨다. 과연 암호화폐와 NFT, 메타버스가 우리를 구원해줄까? |

어차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 '될 대로 돼라'라는 식의 욕구 분출이 증가한다. 명품의 명성에 기대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와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이때 이들의 눈에 들어온 건 이미 결과를 아는 세기말의 문화이다. 지나간 과거는 아무리 고통스러웠더라도 어느 정도 아름답게 보정된다. 이런 식으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며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갈 일말의 용기를 준다.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나니 오히려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이러한 세기말 감성을 통해 나이 든 세대는 지금은 사라져 버린 시대를 추억하고, 젊은 세대는 새롭게 탐구하거나 모험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지긋지긋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