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 생존을 위해, 교세 확장을 위해 양적 성장에 몰두한다. 그러다가 실수하고 회개해도 지워지지 않으니까 특유의 원죄 의식으로 사회를 바꾸려고 한다.
친일이 나쁜 게 아니다.
독재의 성과도 많다.
기독교 사회가 되면 된다.
2007년 1월 8일 저서,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 강인철 http://app.ac/dAwfJY553
친일 부역
1938년 9월 9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 만장인치로 신사참배 의결 https://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702760
1942년 조선기독교회의 재출발,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초대 감독 최태용 목사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이고 우리는 신을 섬기듯 일본을 섬겨야 한다.
1992년 6월 18일 템플턴상 수상 감사 예배
일제 때 신사참배를 했는데 그 죄를 제대로 참회하지 않았다. 일생의 짐이었는데 우상숭배의 죄를 이제야 참회한다., 한경직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89700
2006년 1월 최태용 목사 회계
2007년 3월 1일 죄책고백선언문, 기독교대한성결교히
교단 소속 인사들이 친일적인 언행을 하고 신사참배를 한 것과 가난한 이웃, 가정을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들을 고백한다.
2007년 9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공식 사과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압에 못 이겨 교회가 마땅히 지켜야 할 신앙의 정절과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신사참배에 가담했다.(중략)부당한 일제의 강압에 신앙으로 맞서지 못하고 머리 숙였던 부끄러운 죄를 통절한 마음으로 회개한다.
2008년 9월 24일 제주선교 100주년 기념 장로교 연합감사예배 신사참배 회개
2013년 신사참배 회개 결의 건의안 채택, 기독교대한감리회 제33회 서울연회
독재 부역
북한 공산주의의 종교 탄압을 피해 남한으로 내려와서 반공을 기치로 정치 세력화한다.
188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1911년 신의주제이교회
1945년 12월 2일 영락교회, 한경직
1945년 9월 18일 기독교사회민주당, 윤하영, 한경직 https://www.newspower.co.kr/49700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 학생 사건 https://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50509
북한에서 일어났던 최초의 조직적인 반공 투쟁
1946년 3월 5일 서북청년단(서북청년회): 영락교회 청년회 중심
1946년 대구 봉기(10월 항쟁) 진압
1948~1954년 제주4·3항쟁 진압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초대회장 한경직
2015년 11월 10일 한국전쟁과 기독교, 윤정란 http://app.ac/HtptsnM43
일제 영합
2018년 12월 1일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Korea: The Impossible Country), 디니엘 튜더 http://www.yes24.com/Product/Goods/9328867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 한국의 개신교 종파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쪽은 일제에 저항하는 경향을 보이는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집단이었고, 다른 한쪽은 순전히 교회와 관련된 일에만 관심을 보이고 정치적인 행동에는 소극적인 보수적인 모임이었다. 가혹한 일제강점기를 견뎌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던 만큼, 후자는 일제강점기에 보다 더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미군정의 비호
2019년 6월 7일 역대 정권의 기독교 편향(中) -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기독편향 정책, 박부영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318
해방직후 불교계가 관리하던 40여개의 일본 불교 사원 가운데 30여 개가 불교로 이관되지 않고 교회 피난소 사회사업기관 등에 이양됐다.(중략)1947년 군정장관 대리 헬맥의 “건국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기초로 하여야 한다”는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미군정을 돕는 정부의 한국인 국장급 관리는 기독교인이 60%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중략)미군정은 해방 직후 기독교 인구가 인구의 2~3%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크리스마스를 국경일로 지정했다. 일제시대 일본불교가 전담했던 형무소 교화사업도 목사만 참여시키는 등 기독교 일방정책을 폈다.중략)1947년 3월부터 기독교회는 오늘날 KBS 전신인 서울방송을 통해 기독교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했다.(중략)1951년 전쟁 중에 도입한 군종제도였다. 전투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군종에서 불교만 빠졌다.(중략)이승만 정권은 전쟁으로 파괴된 YMCA,회관 재건축을 지원하고 기독교 방송국 인가 특혜를 주었다. 또한 한국 전쟁 이후 해외 원조가 교회를 통해 들어오면서 한국기독교의 성장 토대가 됐다.
공산주의 반대
2020년 9월 21일 개신교 청년들은 어떻게 극우화되었나?, 권종술 https://www.vop.co.kr/A00001513825.html
우리나라 극우주의 단체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서북청년단’(서북청년회)의 중심 세력이 바로 개신교인들이기 때문이다. 서북청년단은 영락교회 청년회가 중심이 돼 만들어진 조직이다...북한에 소련군이 들어오면서 남쪽으로 교회를 옮겼고, 이듬해인 1946년 영락교회로 개명했다. 그리고, 이 시기 많은 개신교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이들은 한국 개신교의 중심이 됐다.
독재 용인내지는 지원
2020년 9월 10일 “개신교 자정 불가능하다… 새 우물 파는 수밖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배덕만 교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0920500003153
냉전 체제에서 남한은 우익 사회가 됐고 이북 출신들은 더 적극적으로 ‘공산당이 싫어요’ 목소리를 내야 했다. 개인적 경험과 생존적 요구가 만나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됐다. 마침 정권을 잡았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불법 선거, 쿠데타 등으로 정통성이 부족하니 지원세력으로 기독교와 손을 잡았다. 윈윈하며 1990년대 초반까지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나타나 햇볕정책을 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은 사학법 개정으로 수익이 짭짤한 개신교 주머니를 건드렸다. 우리나라 사학의 80%가 개신교 사학이다. 정부가 50년 동안 개신교에 엄청 퍼준 결과다. 여기에 국가보안법도 없애겠다고 하니 개신교가 누렸던 특권을 좌파 정부가 모두 없앤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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