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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미래상

상징/기호
2022년 11월 04일

대부분 트렌드는 서서히 바뀐다. 이상한 징조가 발견되고, 비슷한 사례가 누적되다가 어느새 대세가 된다.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강력한 충격을 받으면 갑자기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히기도 한다. 이러한 것 중의 하나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그리고 이에 이은 트라우마가 있다. 지금 한국인은 집단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걱정할 지경이다. 그리고 이것은 핼러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꿔 놓을 것이다. 안전한 도시에서 즐기는 이색적인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거리의 인파가 만들어낸 현실적인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휴대전화의 존재는 불의의 사건 현장을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한다. 문제는 심의 기준에 맞춰서 편집하는 방송사와 달리 틱톡이나 유튜브 숏츠 등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서 공유되는 영상은 소위 선을 넘기 일쑤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날 것의 현장이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 이러한 문제는 어린이라도 예외가 없다. 지난 10월 29일 토요일, 핼러윈을 즐기려고 모인 이태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 앞으로 핼러윈 풍경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우리는 앞으로 핼러윈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을까?

 

Dark Tourist, David Farrier(2018/07)

 

축제 현장에서 목격한 기괴한 장면이 남긴 후유증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트렌드를 논하는 것조차 죄스러울 지경이다. 이번 일이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단지 너무 많은 사망자가 나왔고, 그것이 '중계'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기괴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표현은 사고 현장을 보고 사용할만한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기괴하다고 느꼈을까? 초기부터 온라인상에서 떠돌던 짧은 영상 가운데는 구급차의 사이렌이 울리는 가운데 그 옆에서 춤을 추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구급차는 사경을 헤매는 급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출동한다는 걸 모두 다 알고 있는데, 그 와중에 팝송, 섹스 온 더 비치(Sex on the Beach)를 신이 나서 외치고 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핼러윈 세계인지 구분할 수 없다. 마치 거리에서 마주한 경찰이나 소방관을 코스프레로 오인한 그 거리의 사람들처럼.

 

그날 밤 이태원에서는 이런 무아지경의 즐거움과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슬픔, 생동감 넘치는 삶과 고통스러운 죽음, 생기 있는 웃음과 일그러진 얼굴이 공존했다. 그야말로 마음 편히 놀러 찾아간 공간, 사람이 많은 것조차 하나의 재미있는 일화로 느껴지는 축제의 현장이 일순간 악몽으로 변한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핼러윈이라는 이국적인 명절을 알고 있기에 평소처럼 좋아하는 캐릭터로 꾸미거나 상처가 난 유령 분장을 하고 거리에 나섰을 뿐이다. 또, 나이 든 세대라도 관광지였던 이태원의 그 골목을 지났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유령 분장을 한 채 그 거리에서 생과 사의 경계를 넘었다.

 

그날 이후, 즐거움보다는 슬픔이 짓누르는 핼러윈 데이

 

과거 세월호 참사가 모든 사람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던 것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수학여행을 가는 배 안에서 앞날이 창창한 생때 같은 아이들이 희생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단지 핼러윈을 즐기러 길을 걷던 누군가의 자식, 친구, 동생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여기에는 한국이 좋아서 혹은 과거의 우리처럼 돈 벌러 한국에 온 외국인들도 포함돼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이유로 많은 젊은이를 잃은 사고는 한참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핼러윈 마케팅에 열중했던 유통업계도 과거만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힘들어졌다. 왜냐하면, 더는 핼러윈이 즐겁기만 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핼러윈 이미지의 변화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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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이미지

핼러윈에 대한 이미지

재미있고 즐거운 이국적인 문화

많은 사람이 죽은 비극적인 사고 기억

10월 31일에 대한 기대감

신나게 노는 축제의 날

조용하게 보내는 추모의 날

핼러윈 참가자를 보는 시선

인기 많은 사람

공감 능력 떨어지는 사람

이태원이라는 장소 다국적·다문화 관광 특구 다크 투어 관광지

 

사실 한국에서 핼러윈(Halloween)은 그 유래가 무엇이건 간에 호박을 사람처럼 꾸민 잭 오랜턴(Jack O'Lantern),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와 같은 겉모습만 따라 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설날과 추석은 가족 중심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보다는 연말 분위기에 취하는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코로나 대유행으로 젊은이들이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핼러윈은 축제의 날이 아니라 추모의 날이 돼버렸다. 외국인이 많고, 다양한 외국 음식과 함께 인기 있는 클럽이 많아서 인기 있었던 이태원 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 역시 완전히 바꿔버렸다. 안 그래도 핼러윈 문화를 마땅치 않아 하던 어른들의 시선이 더해져 시간이 흐르고 상당히 잊힐 때까지 마냥 행복하기만 핼러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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